수입 자동차의 국내 시장 점유 속도가 계속 빨라지고 있다.
국내 브랜드에 비해 부족한 서비스 망을 확충하고, 판매 프로모션을 강화하는 등 한국 자동차 시장에서 국내 완성차 업계를 위협하는 모양새다.
공식 수입된 연도를 기준으로 약 30여 년의 역사를 지닌 한국의 수입차 역사를 알아 보자.
서울 올림픽을 한 해 앞둔 1987년 1월, 정부는 2.0L 이상 대형차와 1.0L 이하 소형차 시장을 우선 개방하며 처음으로 수입차의 수입이 시작됐다.
국내 최초 공식 수입차는 한성자동차의 메르세데스-벤츠다.
대형차를 중심으로 한 첫 해의 성적표는 고작 10대 판매만 기록한다.
수입차 판매는 미미했고 개방 첫해 수입차 판매를 시작한 업체는 한성 자동차(벤츠), 효성 물산(아우디 / 폭스바겐), 한진(볼보), 코오롱 상사(BMW) 등이었다.
그리고 이듬해 1988년 4월에는 전 차종에 대한 배기량 규제를 풀어 완전히 개방되기에 이르렀다.
당시의 분위기는 이제 갓 성장기로 선 국내 자동차 산업의 위축과 외화낭비, 과소비와 사치풍조로 인한 계층간 위화감 조성 등의 이유로 부정적인 시각이 절대적이었다.
또한, 출시 초기는 수입차 50% 관세 부과로 인한 높은 가격과 수입차는 사치품이어서 구입자를 대상으로 세무조사를 벌인다는 소문 등으로 고전을 겪기도 했다.
88년 들어 부(푸조), 두산(사브), 기아(포드), 금호(피아트), 쌍용 (르노) 등이 수입차 판매에 가세하면서 판매량이 263대로 늘었다.
그리고 89년에 1천 293대, 90년 2천 325대로 시장 규모가 커졌다.
또한 50%였던 관세가 단계적으로 인하 90년에는 20%까지 내려갔다.
전체 판매 수치는 사실 얼마 되지 않는 것이었지만 언론은 판매 증가율에 초점을 맞추었고 외제 선호 또는 과소비 라는 비난이 거세어지면서 사회문제로까지 번졌다.
그러나 실제 수입차 업계는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늘어난 판매 수치는 대부분 기아 세이블이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89년 10월부터 판매를 시작한 세이블은 기아가 주문자 생산 방식(OEM)으로 수입한 모델로 석달 동안 493대를 판매했고 90년에는 1천 579대로 다른 수입차 전체 판매량의 절반 가까이에 다다랐다.
국내 메이커가 수입차를 들여다 판다는 비난보다도 수입차 판매가 크게 늘었다는 것 만으로 문제가 된 상황이었다.
이후 수입차 오너에 대한 세무 조사 등으로 찬바람이 몰아친 수입차 시장은 고전을 면치 못한다.
판매량은 91년 1천 736대, 92년 1천 817대, 93년 1천 987대에 그쳤다.
이 과정에서 쌍용이 르노의 판매 계약을 중단하고 두산이 사브의 판매권을 신한 자동차에게 넘겨주는 등 일부 수입사는 영업을 중단할 수 밖에 없었다.
수입업체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운데 등장한 것이 병행수입업자(Gray Importer)들이었다.
병행 수입 업체란 메이커와 직접 독점 수입 계약을 맺지 않은 회사가 타국의 딜러에게서 차를 수입, 판매하는 수입사를 말한다.
이들은 공식업체가 수입하지 않는 스포츠카나 밴 등을 주로 판매 한다.
그러나 애프터 서비스, 품질 보증 등 사후 보장 문제 등에서 공식 업체에 밀려 제자리를 잡기가 힘들었다.
고급 세단의 이미지를 내세운 머큐리 세이블 LS, 캡포워드 디자인과 스포티함으로 차별화를 둔 스트라투스 LX, 유선형의 날렵한 차체를 뽐낸 토러스 LX 등이 시장에서 인기를 끌었다.
개별 모델의 연간 판매 대수는 1,000 대에도 못 미쳤지만 수입차가 국내 시장에 유입되기 시작한 시기다.
포드와 크라이슬러 같은 미국산 차량이 비교적 인기를 끌게 된다.
94년 이후 불어닥친 세계화, 개방화의 바람은 수입차 시장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국산차 판매가 100만대를 넘어서면서 국내 자동차 시장에 대한 통상 압력이 더욱 거세지게 된다.
결국 95년 1월 관세를 8%로 인하시키는 한편, 7천만원 초과 승용차의 취득세를 15%에서 2%로 대폭 낮추었다.
그 해 9월에는 한미 자동차 협상 타결로 특소세와 자동차세까지 인하되기에 이른다.
더불어 판매대리점, 광고시간 등의 규제도 폐지되었다.
이처럼 숨통을 튼 수입차 업계는 본격적인 판촉 활동으로 판매가 크게 늘어나게 된다.
93년까지 2천대 미만에 머물렀던 수입차 판매는 94년 3천 865대, 95년 6천 921대에 이어 96년에는 1만 315대를 팔아 사상최고의 호황을 누리게 된다.
그러나, IMF 여파로 수입차는 97년 8천 136대에서 98년 2천 75대로 판매가 크게 줄어들어 심각한 위기에 부딪치게 된다.
1998년에 판매 1위를 기록한 링컨 컨티넨탈도 1년 동안 고작 152대를 판매한다.
수입차는 99년에 2천 401대로 전년보다 15.7% 늘어났지만 국내 승용차 판매에 대비한 수입차의 시장 점유율은 0.3%에 불과한 실정이었다.
한편 국내 수입차 시장 규모가 커짐에 따라 외국 메이커가 직접 진출 하기에 이른다.
95년 BMW를 시작으로 크라이슬러, 포드가 국내법인을 설립 했고 GM도 99년부터 본격 판매 활동을 시작했다.
볼보와 사브가 승용차 직판 체제를 갖추었고 2000년 토요타가 국내법인을 설립했다.
수입차는 그동안 호화 사치품이라는 곱지 않은 시각 속에서 고전해왔지만 나름대로 성과도 적지 않았다.
우선 수입차는 국내 자동차 시장의 성격을 바꾸는데 영향을 미쳤다.
80년대말까지 우리나라는 모터라이제이션(Motorization)이 가속화되면서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공급자 시장이었다.
메이커의 입장에서는 '없어서 못판다'는 상황이 계속된 것이다.
메이커들은 신기술 도입보다는 잘 팔리는 모델 생산에 주력해 왔다.
수입차가 영업 활동을 펼치면서 보여준 것은 수요자 시장에서의 고객을 중시하는 태도였다.
국내메이커가 단순히 차를 판매하는 데 목적을 둔 반면 수입사는 각종 문화, 스포츠행사를 지원하기도 하고, 자체 행사의 다양화를 통한 고객과의 직접 접촉을 통해 친밀한 마케팅 활동을 폈다.
또한 수입사의 정비공장은 국내 메이커보다 규모는 작지만 판매 대수에 비교 하면 상대적으로 규모가 커 적극적인 애프터서비스가 이루어진 것도 큰 차이점이다.
이에 따라 고객들의 인식이 바뀌는 한편 메이커에게도 수요자 시장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계기가 되었다.
수입차는 폐쇄된 시장에서 안주해온 국산차에 비해 성능은 물론 안전도, 편의 장비 등에서 훨씬 높은 차원을 보여주었다.
이런 수입차를 대하면서 소비자들은 자연스레 차에 대한 안목을 키울 수가 있었고 국산차에 대한 요구를 더욱 크게 해 국내 메이커들의 기술개발에 자극제가 되었다.
실제 수입차가 선보이기 전까지 ABS나 에어백 등 혁신적인 안전장비는 별로 관심을 끌지 못했다.
당시 국산차의 안전 메커니즘이란 충격 흡수식 조향 장치와 안전벨트 그리고 충격 흡수식 범퍼 정도에 머물렀다.
그러나 최근 ABS와 에어백은 경차에까지 옵션으로 달릴 만큼 변화했다.
물론 이런 변화는 국내 내수 시장에서의 경쟁이 심화되고 수출을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었지만 이를 앞당긴 데는 분명 수입차의 역할이 컸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즉 수입차의 역기능보다 전반적인 국산차의 품질 향상에 끼친 순기능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한편 수입자동차시장은 2000수입자동차모터쇼를 전기로 발전의 교두보를 마련하였으며, 특히 일본의 토요타자동차가 LEXUS 브랜드를 가지고 국내 시장에 진출하고, 효성에 이어 극동유화의 고진모터임포트가 Audi와 Volkswagen의 국내 공식 임포터로 출범하는 2000년은 수입차시장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 넣는 계기가 된다.
미국산 모델 위주의 수요가 유럽, 특히 독일 모델 위주로 개편된다.
초기에는 메르세데스-벤츠와 BMW가 주로 팔려 나가는데, 특히 BMW 5시리즈는 매년 판매 상위 목록에 이름을 올린다.
일본차도 시장에서 좋은 평가를 받아 렉서스의 ES 시리즈는 연간 판매량 2,000 대를 꾸준히 넘기면서 ‘강남 쏘나타’라는 별명을 얻게 된다.
혼다는 대중차 브랜드로서 CR-V와 어코드를 앞세워 판매 순위 상위권에 진입한다.
폭스바겐과 푸조, 아우디도 간간히 판매 10위권에 진입하며 수입차 시장에서의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2000년과 2001년은 IMF 이후 급감된 수입차 시장이 다시 도약하는 해였다.
판매 증가율은 100%에 이르렀으며, 판매 모델 및 메이커의 수도 증가 되었다.
수입차에 대한 판매가 회복세를 보이면서 그동안 주춤했던 수입차 브랜드의 현지 진출이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한다.
2002년에 들어 Mercedes-Benz가 국내에 현지법인을 출범시켰고 1998년까지 동부를 통해 수입, 판매되다가 철수한 Peugeot도 한불 모터스를 공식 임포터로 한국 시장에 재진출한다.
2003년 이후 수입차 브랜드 진출은 더욱 가속화되어 Honda와 스포츠카의 대명사인 Ferrari와 Maserati가 국내에 진출했다.
2004년에는 Audi Korea, Nissan Korea 등과 같은 현지 법인 설립과 더불어 롤스로이스와 마이바흐 등과 같은 최고급 럭셔리 세단 등도 국내 판매가 시작되었으며 2005년에는 고진 모터임포트를 통해 수입판매되던 Volkswagen이 직접 현지 법인을 설립 했고 BMW는 MINI판매를 시작하게 된다.
2006년에는 Bentley도 판매를 시작했으며 2008년에 미쓰비시가 MMSK를 통해 국내 진출했고 Nissan Korea는 Infiniti에 이어 Nissan의 판매를 시작한다.
이로써 IMF 시련기를 거친 수입차 시장은 2001년부터 판매에 있어 본격적인 회복세를 보이고 다양한 브랜드의 국내 시장 진출과 현지 법인 설립 등으로 양적, 질적 성장기를 거쳐 시장도약을 위한 기반을 다지게 된다.
2001년까지 국내 승용차 시장에서 1% 점유율을 밑돌던 수입차는 2002년 16,119 대로 1.3% 시장 점유율을 기록해 최초로 1%를 넘어서게 되었다.
이후 수입차 시장은 매년 판매 기록을 갱신하면서 2003년 19,481대, 2004년 23,345대, 2005년 30,901대, 2006년 40,530대, 2007년 53,390대로 매년 크게 성장세를 보였으며, 2008년에는 61,648대로 국내 승용차 시장에서 최초로 6%에 진입했으나 2009년에는 2008년 말부터 불어 닥친 글로벌경제위기로 성장세가 주춤하여 60,993대를 기록했다
수입차 시장이 대중 브랜드와 고급 브랜드로 양분되면서 전체 시장이 급격히 확대되었다.
유럽의 폭스바겐과 푸조-시트로엥, 일본의 토요타와 혼다, 미국의 포드를 중심으로 한 대중차들은 국내 완성차들의 중형, 준대형 차량 구매자들의 수요를 상당 부분 끌어오게 된다.
바야흐로 수입차의 대중화가 본격 시작된 것이다.
2010년에는 Subaru가 시장에 진출하며, 2011년 7월 1일에는 한 EU FTA가 발효되면서, 수입차 시장에 활력을 불러 일으켰고, 드디어 수입차 연간 10만대 판매를 최초로 돌파한다.
이어 2012년 3월 한미 FTA까지 발효되고 시장은 성장에 가속도를 붙여 연간 13만대를 넘어서게 된다.
이에 따라 국내 승용차 시장 점유율의 10%를 처음으로 넘어서게 되어 수입차 대중화의 초석을 마련하게 된다.
한편 한불자동차에서 Citroen 판매를 시작하게 되고 잠시 중단되었던 Mitsubishi 판매도 CXC를 통해 재시작 되었으며, 2013년에는 피아트도 다시 진출하여 시장 내 브랜드의 다양성이 한층 강화되었다.
2014년에는 그동안 Stuttgart Sports Cars에서 수입, 판매하던 Porsche가 Porsche Korea를 설립했으며, 2015년에는 수입차 시장 개방 이래 최초로 연간 20만대를 넘어 243,900대를 기록하면서 국내 승용차 시장내 15%를 넘는 점유율을 기록했다.